알드노아. 제로 7화의 부제인 해후한 두 사람 -The Boys of Earth-는 누가봐도 이 작품의 주인공인 두 사람 이나호와 슬레인을 뜻하는 부제였습니다. 저번화에 예고된 대로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7화에 어울리는 제목이었지요.
사람 두 명이 있을 때 그 두 사람의 관계성은 협력, 혹은 대립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이번 화에선 그 양면을 모두 보여줍니다. 당면한 적을 향해 협력하지만 종극엔 대립합니다. 이 두 주인공을 마찰시킴으로써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 이상으로 두 사람의 차이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지막 엔딩이 나오기 직전의 두 사람이 건넨 대화와 행동이 그렇습니다.
이나호는 슬레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지만 공주님 외엔 눈에 보이는게 없는 슬레인은 침착하지 못한 채 자신의 열망만을 이야기합니다. 그 정상적으로 이루어질리 없는 대화속에서 이나호가 슬레인의 정체를 어디까지 짐작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람은 끝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서로를 향해 사격합니다. 물론 두 사람다 서로를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슬레인은 '먼저 위협사격을 가하고' 이나호는 반격으로 스카이 캐리어의 날개를 쏴서 격추시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
당신은 나의 적입니까
넌 내 적이다
두 사람이 대립할 것임을 가장 확실하게 상징하는 대사를 남기고 4화에서 쓰였던 엔딩곡 aLIEz와 함께 부제를 남기며 부제가 올라오는 것은 굉장히 인상깊은 연출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지금까지 슬레인보다 더 많은 조명을 받아온 이나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죠.
이나호가 로봇만화의 주인공으로써 이전의 주인공들에 비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강점은 임기응변 능력입니다. 여타 지략가 캐릭터와는 다르게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에 말려들어가는 멍청한 적들을 보여주기만 하는 전개는 본 작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게 닐로켈라스 전인데 그것마저도 사실 거의 임기응변에 가까웠습니다. 그 이후로는 이나호에겐 상황에 대비할 시간여유같은건 거의 주어지지 않았고 이나호는 그저 가진 것을 가지고 써먹을 수 있는 전술을 즉시 만들어서 써 왔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완벽한 대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결정적인 순간은 거의 행운으로 극복해 왔으니까요. 닐로켈라스 전에선 스카이 캐리어의 조종사가 슬레인이 아니었거나 공주님이 시간을 끌어주지 못했다면 작전은 실패했을 것이고 그 다음화에선 컨테이너로 아르기레에게 직격은 먹였지만 후속대처가 불분명했고 지난 화의 마지막에서 슬레인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알드노아. 제로는 지난 화에서 끝났을 것이고 이번 화에서도 타네가시마 지하에 전함이 없었거나 그들에게 공주님이 없었다면 이나호와 슬레인은 손잡고 천국으로 갔을 겁니다.
이나호는 단시간 내에 이런 전투를 겪으면서 겨우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을테고 그 와중에 주위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러한 시간의 차이로 아직 태도를 정하지 못한 슬레인이 당신이 적이냐고 물어볼 때, 이나호는 넌 내 적이다라고 단언해 버리죠.
전쟁에 휘말린 소년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조명하는 것도 여러 로봇만화에서 반복된 클리셰인데 두 사람 중에서 이나호가 먼저 변했다는 것을 이번 화의 엔딩에서 보여준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번 화의 내용으로 넘어가면. 이나호&슬레인 콤비가 헬라스와 싸워나가는 것이 이번 화의 주 내용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나호가 로봇만화 주인공으로 가진 자질은 (침착함을 포함해서)임기응변인데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화가 아닌가 합니다. 6화에서 이나호가 궁지에 몰린 것은 적의 분석은 끝냈지만 단지 대항할 수단이 없었던 것 뿐인데 이번 화에 슬레인이 합류했다는 것만으로(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자) 상황을 반전시키니까요. 이나호가 나직하게 삼면육비를 해치우자고 말할 때는 그 대사만으로도 오싹할 정도였네요.
둘이 협력해서 헬라스의 공격을 차례차례 격파해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구도였고, 두 주인공이 협력하는 모습자체도 좋은 요소였으며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꽤나 코믹하기도 했습니다.
코믹했던 것은 헬라스의 변신도 마찬가지인데 이 부분에선 무려 우리 이나호마저도(!) 대단히 놀라고 맙니다. 지금까지 이나호가 보여준 모습들 중에서도 베스트 샷이라고 생각합니다.
헬라스의 변신은 코믹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그 안에 로망이라는 요소의 함량으로 꽉꽉 들어차있는 것 역시 저번화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화에 새로 등장한 전함도 그랬구요. 안쪽에 화력오타쿠가 들어앉아서 '하이퍼 메가'정도의 수식어가 들러붙은 입자포를 빵빵 쏴야 할 것 같은 그런 전함 말이죠.
지난 세기의 로망을 이번 세기의 스타일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 이번 헬라스 전의 의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7화에서도 인상깊었던 연출들이 있습니다. 이나호가 사람들 앞을 가로막고 로켓주먹을 향해 사격하는 모습을 굳이 슬로우모션으로 올리는 것은 공주님이 전장의 한복판을 체험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탄피가 튀어오르는 모습이나 슬레이프닐의 정확한 사격 자세. 아레이온과 슬레이프닐의 동작에선 로봇이 아닌 현대의 군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밀리터리 오타쿠의 로망이 스며들어있음을 느끼게 되더군요.
지하에서 지구군의 카타프락트는 15년 전의 화성의 카타프락트인 크레이터를 베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단 한 컷으로 암시한 이 부분은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죠.
다음 화에선 어떤 화면과 어떤 내용을 보여줄게 될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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