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스피어

 

 

 

 

 첫 장면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다음 20분간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네요.
 는 농담이고.

 

 

 

 

 

 4화에서 이제 슬레인이 공주와 이나호 일행을 추격하기 시작할 거라고 예상했던 건 설레발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5화의 부제는 알현의 장소에서, 이고 영어로는 Phantom of The Emperor인데 5화의 중심이 되는 내용은 귀족들, 그리고 슬레인이 황제와 만나는 내용이 주가 됩니다. 영어로 된 부제는 제대로 운신조차 못해 홀로그램을 써야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황제의 육체적인 허약함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황제의 권위가 유령처럼 유명무실해져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화는 저런 내용에만 러닝타임을 투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블래드와 이나호와의 전투가 절반의 비중을 차지해버렸죠.
 이 작품이 왕도를 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다면 1화에 전투 한 번을 굳이 끼워넣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지금까지의 전투 양상을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양산기를 고철덩어리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왔던 원오프타입 기체에 대한, 그리고 전장에서 중2병 걸린 대사를 외치며 폼잡던 파일럿들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것에 어디에 왕도가 있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의 성격조차도 대단히 유니크해서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다 이전에 쓴 리뷰에서 말했듯이 1-2화는 부족하게나마 세계관과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과 상황을 풀어내는데 공을 들였는데 지금은 전투장면을 내보내는데 급급합니다. 이미 사파에 가까운 시작과 전개를 보였었는데 이제와서 왕도적인 전개로 가겠다는 건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넣은 5화의 전투신이 괜찮았느냐 하면, 블래드와 아르기레가 너무 포스가 없습니다. 이전에 썼듯이 적과의 전력차가 클수록 그것을 극복해내는 카타르시스가 커지기 마련인데 블래드와 아르기레가 그만한 강력함을 보여줬는가 하면 이미 4화에서 한 번 일격을 당한 상태이고 시청자가 이나호에게 바라는 기대치 역시 낮지 않습니다. 그런 요소들 때문에 5화의 전투는 이전에 보여준 것과 같은 신기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투의 양상과 연출이 좀 더 나았다면, 그러니까 아르기레를 상대로 나름대로 저항을 하는 아레이온과 그것들을 결국 썰어버리고 있는 아르기레 사이에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이나호. 이런 방식으로만 나왔어도 좀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나호가 출격해야만 하는 동기 역시 없습니다. 이나호가 작전을 침착하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어서 자기가 직접 나갔다.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이라도 좋으니까 내보여줬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요.

 

 

 

 

 5화에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스토리상으로 큰 의미 없는 전투에 쏟아부었으니 당연히 서사가 부족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작품은 원래도 서사가 부족했다는 겁니다. 제작진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아직 4화밖에 안 지났었으니까요. 주구장창 설정 이야기나 하고 있었어야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재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준비해둔 이야기 보따리에서 필요한 만큼씩 끄집어 내서 시청자를 홀리고 있었어야 할 시기라는 거죠.
 그런데 5화는 5화의 사정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지요. 당장 4화와 5화에서 블래드가 어떻게 이나호 일행을 찾아왔는지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보고 싶다고 바로바로 찾아오는 걸 보니 지구군이 아예 화성인들 손아귀 안에서 놀고 있나보다 짐작만 할 뿐입니다.
 버스 제국 이야기로 가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버스 제국이라는 군주정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귀족과 황제의 사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버스 제국의 상황을 풀어내고 있으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갑갑하기 그지 없습니다.

 황제가 휴전명령을 내리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는 개념이 있긴 있는 사람이다. 귀족들은 황제와 소통할 수 있는 계층이라는 프라이드가 있구나. 그런데 황제와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전포고한건 너희들도 먼저였잖아. 그런데 어떻게 귀족들이 황제 명령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할 수가 있나. (살짝 비꼬자면 정부 해군 육군이 다 갈라져서 한쪽이 다른나라에 마음대로 전쟁 걸던 나라의 후예가 만든 이야기 답습니다.) 황제가 황제가 된 건 알드노아의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구나. 그런데도 황제의 권력이 대단히 약하긴 한가보다. 첫장면의 황제와 마지막장면의 황제가 너무 다른데 노망들었나 아니면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는거냐.

 이런 추측들을 가지고 현 상황에 끼워맞추는 식으로밖에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죠.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아직 없으니까요. 이전까지 등장인물들의 대화든 독백이든 화성의 정치체계에 대해 정보를 뭐라도 흘려둔 게 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부족한건 서사뿐만이 아닙니다. 연출 자체에 여유가 전혀 없어요. 장면 장면이 이어지는 느낌 없이 사건을 따로따로 붙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다가 자츠바움이 마지막에 트로이어드 박사의 이름을 언급하는 건 너무 노골적으로 복선을 뿌리는 장면이라 말하기도 싫고, 이나호가 아르기레를 격파한 뒤 혼자 설명하는 부분도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건 함장이 "해수를 증발시켜 그 압력으로 파괴할 생각을 하다니.. 어쩌고" 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죠.

 모든 화가 완벽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고, (그런 작품은 거의 없기도 하고) 나중에 방영분이 더 쌓이고 나서 5화를 보면 아 이때 이래서 이랬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5화는 확실히 실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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