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스피어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어도 스포일러를 할 수 없는 종류의 영화들.

 왜냐면 스포일러할 스토리가 없거든요.


 존 윅이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아요.

 이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스포일러도 아니니까 들어보세요.


 여기 존 윅이란 친구가 있어. 전설적인 킬러지. 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어 그래서 이제부터 이 친구가 액션을 할 거야.

 자, 볼 준비는 되었나?


 그리고 존 윅은 검은 옷을 멋있게 입고 스타일리한 액션으로 자신에게 덤비는 사람들을 마구 죽입니다. 오, 설명만 들으면 이 영화는 타임킬링용이 아니면 볼 가치도 없는 허접한 B급 영화처럼 들려요! 하지만 이 영화는 총을 빵야빵야 쏘면서 적을 쓰러트리는 데서 오는 싸구려 카타르시스를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말 멋있죠......


 왜냐면 존 윅은, 그는 키아누리브스거든요.

 키아누리브스의 긴 기럭지와 우수에 젖은 얼굴은 이 영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포인트입니다.

 부상입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도 넘어져 구르면서 총을 쏴도 간지가 철철 넘칩니다. 총 쏘는 모션이 이렇게 고급스러운 것이었나요?

 그 모습은 이렇게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가 뭐가 필요해 난 키아누리브스라고!'


 그리고 모든 액션을 끝낸 후 영화는 깔끔하게 없이 막을 내립니다. 관람객이 아쉬워할 정도로 깔끔하게.

 이 영화속엔 키아누리브스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멋진 설정과 캐릭터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아까울 정도로요. 막이 내리면 그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요! 오 맙소사!

 그리고 영화는 교훈과 메세지만을 하나씩 남깁니다.

 참고로 적자면 교훈은 자식교육은 잘해야된다이고 메세지는 반려견 권장입니다. 물론 뻘소리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자, 이제 여러분은 존 윅의 모든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이제 보러 가시면 됩니다.

 내용을 다 아는데 무슨 재미로 보냐구요?

 무슨 소리예요. 아직 안 '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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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낙원추방은 미즈시마 세이지씨가 감독을 맡아 이번에 새로 나온 극장판으로

 쿠기미야 리에씨가 연기한 여주인공과 미키 신이치로씨가 연기한 남주인공이 카미야 히로시씨가 연기한 인공지능과 만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기동전사건담 더블오 외전같은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카미야씨가 인공지능이란 것까지 똑같지만 아닙니다.


 그래서 5년전에 많이 들어봤던 목소리들이 한번에 나오는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그런건 기억 안나고 여주인공인 안젤라 발자크밖에 생각이 안납니다.


 예를들면 쉴새없이 흔들리는 가슴이라던가

 파일럿슈츠 밖으로 드러난 어깨와 겨드랑이라던가

 절반이상 드러난 둔부라던가 그 아래로 이어지는 허벅지라던가......


 반쯤은 농담인데 나머지 절반은 진담입니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발칙하게 귀엽고 예쁘다고요. 화면에 안젤라밖에 안보이더라니까요. 사실 지금도 안젤라의 사복차림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타이핑을 하고 있습니다. 2시간 동안이나 에로에로한 파일럿 슈츠를 입어줘서 매우 고맙습니다만 그거야 그것이 캐릭터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지 이제 안젤라도 여러가지 옷을 입어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뇌공간에서야 데이터를 바꾸는 것만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천조각이 맨살에 스치는 감각을 느끼면서 정말로 '옷을 갈아입는다'가 어떤 건지 즐기게 되지 않을까요.


 안젤라의 조형과 움직임은 3D로 표현되어 있지만 2D적으로 보이는데 디즈니에 나오는 엘사 더 퀸처럼 자연스러워보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그 나름대로 좋더군요. 아르페지오나 시도니아를 볼때는 되게 싫었는데 극장판 정도 되니까 그 불쾌함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애니메이션이란 게 원래 그렇지만 3D는 자본이 얼마나 들어갔는지에 따라 차이가 극명하게 보이는 부분이니까요. 그렇게 극장판의 감투를 쓰고 자본의 옷을 입어 표현된 안젤라는 눈 뗄 곳 하나 없이 좋았습니다. 가슴이라던가 허벅지라던가 하는 제작자의 노골적인 의도가 담긴 부분들 외에도 안젤라의 다양한 표정같은 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귀엽습니다. 찡그린 표정도 좋고 따분해하는 표정도 좋아요. 깡패 몇 놈 후드려패고 잠깐동안 자신만만해 하다가 잡혀서 발버둥치는 것도 좋았죠. 제작진들도 안젤라를 만들면서 흐뭇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안젤라의 목소리를 맡아 연기하신 분은 위에서 말한대로 쿠기미야 리에인데요. 쿠기미야 씨는 배역이 어린 소녀에 몰리는게 아까울 정도로 연기력 출중하신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인 분이지만 어린 소녀에 어울리는 귀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것은 이번에도 극히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안젤라의 클론은 스타일이 나이스해서 그렇지 16살에서 성장이 멈췄고 얼굴은 2D틱하게 유아적으로 그려진 조형이지요. 거기에 귀여운 표정들과 쿠기미야 씨의 목소리라니 반칙 아닙니까.

 그러니까 안젤라는 캐릭터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마저도 완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보다 완벽한 것은 완벽하다는 말 외엔 없을거예요.


 슬슬 눈치채셨겠지만 전 낙원추방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하는 게 아니에요. 안젤라를 찬양하려 하는 거죠.

 예를들면 안젤라가 지구에 처음으로 내려왔을 때 끈적거리는 젤리같은 것을 털어내고 세차게 기침하는 것은 막 태어난 아기를 연상하게 하죠. 후에 흙을 먹어보는 것까지도 그렇구요. 참으로 SF적인 연출이며 이것은 안젤라가 미성숙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요소와 연결됩니다. 남주인공인 딩고와 대비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업성을 위한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지구에서 새롭게 태어나 살아가게되었다는 복선이기도 한 것이죠.


 그렇지만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우로부치 씨가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 썻던 것처럼 미래의 기술로 통제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디스토피아와 대충 망한 지구에 남은 물자를 가지고 살아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대비가 배경으로 있다는 거나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간성을 배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교감을 그리고 있다는 거나 쓰바라시이한 조형의 로봇이 서로 싸우며 두다다다 산산조각내는 화려한 액션씬이 있다는 건 어느것 하나 빠질것 없이 제가 좋아하는 요소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안젤라가 딩고에게 끌려다니면서 불평을 토해내는 모습과 점차 즐겁게 웃을 수 있게 변해가는 모습과 아한의 오토바이형 좌석에 탑승하면서 치켜올린 다리와 그 자세에서 강조되어 보이는 하얀 엉덩이와 허벅지가 더 마음에 들더라는 겁니다. 왠지 설명이 쓸데없이 자세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낙원추방은 SF의 클리셰들로 조합되어 만들어진 희망적이고 깔끔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안젤라가 야하고 귀엽고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써버렸군요.


 이상 안젤라... 아니 낙원추방 감상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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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Fiat justitia, pereat mundus
 
 오프닝에서 공주님이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지나간 후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문구는 라틴의 격언입니다. 그리고 12화의 마지막까지 와서 이 문구는 12화의 부제를 다시 한번 장식합니다.
 
 
 
 설령 하늘이 무너져도,
 
 
 
 


 

 유년기의 끝은 아서 클라크의 유명한 SF 장편소설로 '인류가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멈추고 정신적으로 성장하여 통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니다. 이 소재는 이후 수많은 SF계열의 픽션에 차용되며, 이것은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라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여러 작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알드노아. 제로의 원안을 맡은 우로부치 겐의 전작 중 하나인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에서 등장하는 큐베라는 캐릭터가 유년기에 끝에 등장하는 외계인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12화의 부제는 유년기의 끝의 내용보다는 그 제목만을 빌려온 것으로 보이며 본작에서는 주역, 그 중에서도 슬레인의 유년기가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대규모 비극에 떠밀려 강제로 끝맺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작에서의 유년기라는 단어가 '인류의' 유년기를 빗대었다면 알드노아. 제로에서는 슬레인의 처지를 직접 빗댄 것입니다. 유년기의 끝이란 부제가 그 뿐만이 아니라면 종국에는 지구와 화성의 갈등이 해결되고 통합하게 될거라는 그 후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12화는 11화의 마지막에 양륙성에 추락한 데우칼리온에서 공주님을 구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흐른 배경음은 굉장히 훌륭해서 알드노아. 제로의 음악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공주님을 구출하고 이나호는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대사는 자츠바움의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뒷받침합니다. 이 대사 이후에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던 자츠바움이 등장하며 최종전을 시작합니다. 공주님을 비롯한 이나호 일행과 흑막인 자츠바움 경이 서로를 처음으로 인지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잠깐 그 포스만을 보이고 사라졌던 디오스쿠리아는 이번 화에 와서 로망이 잔뜩 함유된 전투신을 보여줍니다. 디오스쿠리아는 1기를 진행하는 동안 이나호가 싸워왔던 화성기사들이 가진 무장인 방어막, 빛의 검, 로켓 주먹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알드노아 드라이브로 구현할 수 있는 무장이 여러종류가 있고 화성기사들은 그것들 중 원하는 것을 채용하는 시스템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2화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것 같은 다른 무장들을 들고나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 무장을 가지고 있어야 이나호와 그가 싸우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던 유키 누나와 잉코가 약점을 간파하기 쉽다는 전개상의 이유가 있긴 하지만 덕분에 디오스쿠리아가 가진 개성은 그 외모 외엔 합체변신 기믹밖에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슬레인은 데우칼리온을 쫓아 다시 양륙성으로 돌아옵니다. 양륙성을 점령중인 지구군에게 격추되는데 이 때 만난 화성군인과의 대화는 슬레인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슬레인과 대비되는 인간상 중 한 명인 라이에가 이나호 일행에 편입되는 과정이 심도있게 그려진 한 편 슬레인이 자츠바움과의 대화 이후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묘사는 슬레인이 자유를 얻었음에도 11화에서 곧바로 공주님을 찾으러 나가지 않고 한참을 스카이캐리어가 출격하는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장면이 전부였습니다. 슬레인의 고뇌는 이 작품의 내용진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만큼 무리해서라도 세심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에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슬레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르시스를 구동시키러 갑니다. 슬레인이 타르시스를 찾으러 가는 씬을 굳이 넣지 않고 생략한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나 아이캐치 전후로 편집한 것은 너무 안일했습니다. 여기서 슬레인에겐 그도 몰랐던 알드노아 드라이브의 기동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저는 트로이어드 박사 역시 알드노아 드라이브를 기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게 아닌가 추측하는데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한 비밀은 2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사용됩니다.
 

 

 


 

 디오스쿠리아는 변신장면에서 보여준 그 포스에 비하면 허망할 정도로 쉽게 격파됩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한번 뿐일 정도로 가진 무장조차 제대로 활용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알드노아. 제로의 전투양상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SF적인 무장들을 가진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실탄병기로 쳐부수는 유니크함에 그 강점이 있습니다. 마치 현실을 얕보지 마라! SF! 라고 외치는 느낌이 들죠. 그 대신 철과 철, 기계과 기계가 부딪히는 마초스러운 격렬함 같은 것은 부족합니다. 디오스쿠리아가 가진 무장은 이미 이나호와 그 일행이 한번 격파해본 것들이기 때문에 딱히 더 보여줄 것이 없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최종전에 할애할 러닝타임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니 11화 이전에 약간 밀도가 낮았던 부분들에서, 예를들면 공주와 아이들이 만나는 부분같은 장면들을 조금씩 쳐내고 진도를 더 빠르게 빼내는게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디오스쿠리아와의 결투는 여성진들을 먼저 보내고 기체들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이어집니다.
 
 슬레이프니르가 손으로 대각을 긋고 이나호가 고개를 들며 도발하는 신은 지금까지 본 이나호가 지금까지 콕피트 안에서 보여준 모습들 중에서도 가장 멋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도발당한 자츠바움 경은 마구잡이로 이나호에게 달려들면서 그의 증오를 토해냅니다.
 

 


 

 슬레인은 자츠바움 경의 절규를 모조리 통신으로 듣게 됩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도중 자츠바움에게 무의식중에 감화되어 가고 있었던 슬레인의 고뇌에 결정타가 되어 슬레인은 자츠바움을 구하기 위해 달려듭니다.
 

 

 

 

 슬레인이 타르시스에서 내린 후에 가장 먼저 자츠바움부터 찾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에 공주님이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워합니다. 공주님은 예의 오렌지색 기체에 다가가 파일럿을 깨우다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그 사격을 가한 사람은 자츠바움이었습니다.

 

 


 

 자츠바움은 공주님이 쓰러지는 걸 본 슬레인에게 도와줘서 잘했다고 칭찬하는데 고의로 도발할 생각이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슬레인은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과거 트릴랑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츠바움에게 무차별 난사를 퍼붓습니다. 그 중 제대로 맞은 것은 한 두발뿐이었고 자츠바움은 쓰러진 후에 제대로 죽이라며 자신의 이마를 가르킵니다. 자츠바움이 했던 대사에 비추어보면 할 일은 다 했으니 대신 복수해줄 사람도 없는 자신의 죽음으로 증오의 연쇄를 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슬레인은 격정적인 감정의 홍수 속에서 그 마지막 한 발을 쏘지 못합니다. 격정에 휩쓸려 자츠바움에게 발포하긴 했지만 그것은 슬레인이 바랬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공주바라기로써 오로지 공주만을 위해 허락없이 알현실을 사용하고, 탈영하고, 고달픈 고문을 견뎌냈던 소년은 이제 아세일럼 이후에 처음으로 그를 대등한 존재로 대해주었고 목숨도 구해줬으며 자유도 주었던 자츠바움에게도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슬레인의 눈에 오렌지색의 파일럿이 공주님에게 기어가는 모습이 비칩니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슬레인을 상대로 공주를 이용하면 곤란하냐고 되물었고 너는 내 적이라고 규정했으며 지금은 자츠바움까지 쓰러트린 그 파일럿이요.
 

 

 

 


 

 

 이나호는 공주님에게 기어가며 그녀와의 짧은 추억을 떠올립니다. 지금까지는 이따끔 감정의 편린같은것이 묻어나오는 듯한 표정변화를 보여준 것이 이나호가 보여준 감정표현의 전부였습니다. 그 외엔 주변상황을 풀어가거나, 소품을 통해서 보여주거나, 혹은 타인을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절제되어 왔던 감정표현이 12화의 마지막에 와서 터집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요. 이나호가 명확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장면은 12화뿐만이 아니라 본 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슬레인은 그렇게 기어가는 이나호에게 총을 겨눕니다. 분노에 미친 상태에서 트릴랑과 자츠바움에게 총을 겨누었을때와는 달리 차분한 어조입니다. 감정을 정리했는지, 정리한 척을 하는건지는 알수없습니다만 어쨌든 선의를 가지고 있던 소년은 이 순간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변했습니다.
 
 이나호와 슬레인 두 사람은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부릅니다.
 

 

 

 

 

 

 오렌지색.
 
 박쥐.
 
 이나호가 처음으로 명확한 감정을 내보인데 이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이나호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슬레인에게 총을 겨누고 슬레인은 망설임없이 이나호에게 발포합니다. 자츠바움이 가르쳐주었던 대로 확실하게 머리를요. 지금까지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에 대처해왔던 이나호가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지금까지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해왔던 슬레인이 냉정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슬레인이 아버지에게서 받았고 공주님에게 건넸던 펜던트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그의 유년기가 끝나고 자신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슬레인이 자츠바움에게로 걸어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알드노아 체임버에서 일어난 비극은 막을 내립니다. 다음장면에선 나레이션이 깔리며 알드노아. 제로 1기가 끝났음을 알리는데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데우칼리온의 전원이 꺼졌다면 공주님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공주님은 행방불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직 살아있으며, 슬레인은 그 공주님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뿐입니다. 자츠바움과 이나호에 대한 언급은 없으므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알드노아. 제로 1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알드노아. 제로의 주역인 이나호와 슬레인, 아세일럼은 전부 이타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의를 가진 자들의 행동이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뒤틀려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과 그로 인한 파멸같은 것들은 스토리 원안을 맡은 우로부치 겐이 자주 쓰는 소재죠. 알드노아. 제로 역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들이 엇갈리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다 1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파멸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이 파멸로 인해 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는 것이 2기의 즐거움일 겁니다. 한 분은 아예 못 보게 될 수도 있지만요.
 
 정말 놀라웠던 것이 그 파멸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심했다는 것인데 노골적으로 말하면 2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전개입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1기의 중후반부가 거의 그랬죠.
 
 슬레인이 이나호를 구하는 씬으로 끝나는 6화 / 슬레인과 이나호가 서로에게 발포하는 씬으로 끝나는 7화 / 자츠바움이 슬레인을 구출하는 씬으로 끝나는 8화 / 라이에가 공주님을 교살하는 씬으로 끝나는 9화 / 자츠바움이 슬레인에게 자유를 주는 씬으로 끝나는 10화 / 데우칼리온이 양륙성에 추락하는 씬으로 끝나는 11화
 
 이 장면들은 중후반부의 몰입도를 높여주었고 매번 다음화를 기대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엔터테인먼트로써 굉장히 고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화가 있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고, 1기의 마지막도 2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마무리죠. 완전히 꽉 짜여진 작품이라곤 할 수 없고 미묘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만족할 수 있을만큼은 개연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은 없었거든요. 묘사의 부족으로 인해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정도네요.
 
 3개월동안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제 다시 3개월 후를 기대해봅니다. 슬레인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이나호는 목숨을 부지했을지가 무엇보다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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